들어가는 말
아카드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셈족인 아카드인(Akkadians)들에 의해 건국되었다. 이전의 수메르 문명에서는 여러 도시국가가 존재했으며, 이들 간의 전쟁과 경쟁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아카드인들은 다른 도시국가를 정복하며 제국을 세웠다. 이러한 정복 전쟁에서 사용된 전술적인 차별성은 높은 전략적인 역량을 보여주며, 이것이 아카드 제국의 건국과 이후의 전성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은 지난 포스팅에 이어서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 대왕의 사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보겠다.
아카드 제국2
아카드 제국의 혼란기
아카드 제국의 혼란기는 초대 사르곤 왕의 사후와 리무쉬 왕, 그리고 그의 형이자 3대 왕이 된 마니쉬투슈의 통치기에 이르는 시기를 가리키며, 약 150년간의 기간을 포괄한다.
혼란기의 시작은 제국의 시작을 알린 사르곤 대왕의 말기부터 징조가 있었다. 제국 내에 기근과 흉작이 겹치며, 백성들의 불만이 극도로 높아졌으며, 이미 수많은 반란이 벌어졌다. 물론 사르곤 대왕은 탁월한 군사력으로 모든 반란을 평정했다. 그렇기에 사르곤 대왕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그의 카리스마로 인해 제국이 유지되었다고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 사르곤 왕의 사후,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였고, 그 결과 왕좌를 계승한 리무쉬 왕도 결국 자신의 왕위를 안정시키지 못했다. 사르곤 대왕은 뛰어난 군주였지만, 그의 자녀들 중엔 군재가 없었던 것이다. 아카드 제국의 2대 왕으로 즉위한 리무쉬 왕은 즉위와 동시에 반란들을 제앞하기 바빴다. 그도 아버지에게 본 것은 있었기에 반란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 잔혹한 학살을 펼쳤다. 무려 리무쉬 왕이 즉위하면서 죽기까지 9년 동안 제국은 피바람이 불었다. 그간 많은 도시의 성벽과 신전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던 중 기원전 2270년 경 리무쉬 왕은 궁정에서 신하에게 돌로 된 인장으로 맞아 죽게 되었다. 리무쉬 왕이 죽고 난 후 아카드 제국의 왕좌는 사르곤 왕과 타쉬룸툼 왕비의 아들인 마니쉬투슈가 이어받게 된다.
아카드 제국의 3대 왕이 된 마니쉬투슈도 자신의 동생과 동일한 입장에 놓인다. 수많은 반란이 마니쉬투슈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마니쉬투슈 왕도 리무쉬 왕과 동일하게 잔혹한 폭정으로 반란을 다스렸다. 그렇게 잠시 제국은 평화를 되찾는 것 처럼 보였다. 심지어 마니쉬투슈 왕은 국외 원정을 통해 영토를 확장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리무쉬 왕 때 쇠퇴했던 무역도 다시금 부흥시켰다. 마니쉬투슈 왕의 아카드 제국은 티그리스 강을 통해 37개의 도시들과 무역을 했다. 또한 백성들의 마음도 매만 질 줄 알던 왕이었다. 무너졌던 니네베의 이슈타르 신전을 복구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혼란기가 점차 막을 내리고 왕권이 강해지는 것 같던 이시기 마니쉬투슈 왕은 기원전 2255년, 리무쉬 왕과 같이 궁정 신하에게 살해 당한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나람신이 아카드 제국의 제4대 왕으로 등극한다.
아카드 제국의 전성기
제4대 왕인 나람신 왕이 다스린 시기는 기원전 2254년 - 기원전 2218년까지였다. 그리고 이 시기 아카드 제국은 사르곤 대왕 때 누렸던 영광을 되찾게 된다. 사르곤의 손자인 나람신은 그의 할아버지의 군사적 재능을 물려받은 지도자였다. 나람신 왕이 즉위했을 때에도 수많은 도시 국가들은 서로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나람신은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반란한 도시들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3명의 왕을 사로잡아 제국은 여전히 건제하다는 것을 제국 내외로 알렸다.
나람신 왕은 아카드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다. 나람신 때 아카드 제국은 역대 최강의 세력과 최대의 영토를 자랑했다. 나람신 왕 때 아카드는 지중해에서 아르메니아 지방까지 다 달았다. 또한 아카드에 가시와 같던 엘람의 군주들과도 평화 조약을 맺어 아카드 제국의 국경을 안정화시켰다. 수사 지방엔 총독까지 파견하여 왕권과 제국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했다.
나람신 왕도 사르곤 왕과 같이 제국 곳곳에 자신의 모습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제국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무역에도 힘을 썼으며, 새로운 지방을 정복하고 그곳에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과 총독을 세웠다. 이로써 아카드 제국은 중앙 집권적 제국이 되었다. 또한 지방에서 자치적으로 내정을 처리할 수 있도록 행정기구들을 두기도 했다. 대신 제국의 통합을 위해 종교에 힘을 썼다.
나람신 왕은 특히 종교를 왕권 강화에 잘 사용했는데, 그동안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선 왕을 신의 대리자로 여겼다. 그러나 나람신 왕은 자신을 이 세상에 강림한 신 자체라고 주장했다. 왕권과 신권을 함께 강화한 것이다. 그러면서 사제 계급을 우대하고 그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었다. 나람신의 이러한 노력은 아카드 제국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게 했다. 덕분에 나람신 왕은 사계왕이란 칭호로 불렸다. 기존의 메소포타미아와 정복으로 인해 얻은 자그로스 산맥, 아르메니아. 동 아라비아까지 다스린 왕이란 뜻이다.
아카드 제국의 멸망
그러나 나람신 왕 사후, 아카드 제국은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특히 자그로스 산맥 인근에 기원을 둔 유목민족 구티족의 침략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이미 아카드 제국은 사르곤 대왕 때부터 구티족을 경계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르곤 대왕 때는 격퇴하기 까지 했다. 그래서 사실 나람신 왕 때까지만 해도 구티족은 아카드를 넘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람신 왕 사후 점차 세력이 약해져 가는 아카드 제국을 바라보며 구티족이 제국을 침략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구티족이 아카드를 괴롭힌 이유는 구티족은 유목민족이다 보니 농경 사회에 대한 이해강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침략하여 정복한 도시를 구티족은 뒤도 안 돌아보고 불태운 것이다. 심지어 가축화한 동물들은 풀어주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카드 제국의 경제가 구티족이 침략할 때마다 무너져 내렸다.
아카드의 제5대 왕으로 등극한 샤르칼리샤리는 아카드 제국이 파탄난 상황을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티족과 싸우기 위해선 세금이 필요했고 세금을 인상하려 하자 도시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기근과 흉작까지 겹치니 아카드 제국은 멸망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샤르칼리샤리 왕 때 아카드는 북쪽의 구티족의 침입과 서쪽의 아모리족의 공격, 내부에서는 우르크를 중심으로한 수메르인들의 반란까지 일어났다.
그러다 샤르칼리샤리 왕이 죽게 된다. 그렇게 아카드 제국은 거의 무정부 상태가 된다. 왕의 사후 이기기, 이미, 나눔, 일루루 네 명이 동시에 왕위를 주장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멸망의 가도를 달리는 제국에게 제트 엔진을 달아준 셈이다. 결국에는 사르곤 왕조의 혈통인 두두라는 인물이 내홍을 종식시키고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제국은 망국의 길을 열심히 걷고 있었다. 아카드의 제6대 왕으로 등극한 두두 왕은 내부적으론 봉신 국가였던 움마나 엘람의 도시 국가들과도 싸워야 했고 구티족과도 맞서야 했다. 두두 왕 때 아카드는 더 이상 제국이라 부를 수 없었다. 이미 영토는 수도인 아카드를 제외하곤 없었기 때문이다.
두두 왕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인 슈툴루가 왕으로 등극했다. 이 슈툴루 왕이 아카드의 마지막 왕이다. 그는 죽기 살기로 아카드 제국을 회복시키려고 했다. 다행인 것은 슈툴루 왕은 사르곤 왕의 핏줄이 맞았다. 군사적으로 재능이 있던 것이다. 그는 키시와 투툽, 에슈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르크를 다시금 아카드 제국 영역 안으로 복속시켰다. 그러나 이런 슈툴루 왕도 북쪽의 구티족은 버거웠다. 구티족은 유목민족의 특징인 막강한 기동성을 이용해서 수도인 아카드를 함락시켰다. 이때 아카드의 7대 왕인 슈툴루 왕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사르곤 대왕으로 시작된 인류 최초의 제국 아카드는 구티족의 침략으로 18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살아졌다.
결론
역사상 최초의 제국으로 평가받는 아카드는 180여 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구티족의 침략으로 살아졌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 사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르곤 대왕을 필두로 강력한 군사력으로 탄생한 국가 '아카드'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아카드 제국도 결국 다른 강력한 무력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역사상에서 살아진 제국에 대해서 우리는 21세기에 알 수 있다.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가? 바로 기록 때문이다. 아카드는 수메르인들이 사용하던 쐐기 문자를 사용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 덕분에 우린 과거의 일인 아카드라는 제국에 역사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강력한 무력도 풍족한 제국도 영원할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살아진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글인 기록은 보존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 우리가 그 시대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역사는 글의 위대함과 글자의 위대함을 더더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계속해서 남아 있는 사료를 기준으로 알아갈 문명과 나라들이 더욱 기대되는 시간이다.
언젠가 나도 죽고 없어지겠지만, 나의 글은 남을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우면서도 무언가 놀라우며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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