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튼의 두번째 방문객 - 켈트족

 이베리아인 이후 브리튼 섬으로 이주해온 민족이 켈트족이다. 참고로 켈트족은 고대 로마시대엔 갈리아인(프랑스 갈리아 지역의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불리었다. 그렇다면 갈리아인이자 켈트족은 언제 브리튼 섬으로 이주한 것일까? 대략적으로 기원전 6 - 4세기에 프랑스의 갈리아 지역과 영국의 브리타니아로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켈트족의 특징은 라텐문화, 즉 유럽철기시대의 문화를 낳은 민족으로 호전적이며 목축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이들이었다. 
 
 켈트인들은 브리튼 내에 구릉지대에 성채를 구축하였고, 기원전 2세기엔 켈트 고유의 섬 국가 문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돼지고기를 먹고 맥주를 마시는 것과 드루이디즘 의식의 발달, 켈트족 특유의 토조 성채를 쌓는 등의 기술이다. 심지어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기의 내용을 보게되면 고대 시대인 이때부터 브리튼인의 왕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즉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역사에도 기록될 정도의 강한 부족들이 등장했지만, 통일된 왕조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는 켈트족의 한계였다. 강한 부족국가가 있더라도 통일된 국가가 없다는 것은 결국 산발적인 세력이란 뜻이다. 중앙 집권적인 로마 앞에선 켈트인들은 너무나도 약했다. 이 내용은 로만 브리튼에서 좀더 다루겠다.
 
 그렇다면 기존에 브리튼에 살고 있던 이베리아인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켈트인들이 이주하기 전에 다 죽은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아리안의 한 분파인 켈트족이 브리튼에 이주하면서 기존에 터를 잡고 있던 이베리아인들을 학살하거나 산지로 몰아 버리거나 동화를 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브리타니아를 켈트족의 문화권으로 장악한 것이다. 학자들은 이 시기에 이베리아인들이 거의 말살 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브리튼의 최초인은 분명 이베리아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를 만들고 남긴 것은 켈트족이다. 그렇기에 브리튼의 최초의 문화적 원주민은 켈트족이라고 할 수 있다. 
 

 브리튼 내의 켈트족 구성

 켈트족은 아일랜드의 게일인과 스코트랜드 쪽의 픽트족과 로만 브리튼, 브리튼인으로 나뉘게 된다. 특별히 픽트족은 끝가지 로마 침공에 대항하여 싸웠던 이들이었다. 이와 반대로 브리튼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아들인 이들로 로마제국에 동화되어 생김새만 켈트족일뿐 생활습관과 생각은 로마인 그 자체가 된 이들이었다. 또한 브리튼인 중에는 로마인들과 결혼하여 혼혈을 낳기도 했다. 물론 이 내용은 로만 브리튼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픽트족과 브리튼인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기점을 이북은 픽트족, 이남은 브리트인의 거주 구역이었다.
 
 그러나 서로마의 멸망 후 픽트족이 브리튼 인들을 학살했다. 이때 공격당하던 브리튼인들이 앵글로색슨족의 용병을 고용했다. 그런데 앵글로색슨족이 배신하여 브리튼인들을 도륙하고 산악지역으로 몰아낸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앵글로색슨족으로 부터 브리튼인들을 구원해줄 구원자를 만들어내게 되는데 그 인물이 바로 아서 왕이다. 아마도 잠시나마 앵글로색스족의 침공을 막아냈던 지도자를 미화해서 전설로 발전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이때 도망친 브리튼인들이 후에 웨일스인이 된다. 
 

결론

 오늘 살펴본 바와 같이 영국의 현재까지 남아 있는 혈통 중 가장 오래된 혈통이 바로 켈트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켈트족의 역사는 영국 역사의 중세시대까지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앵글로색슨족이 중심이되는 7왕국 시대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오늘은 브리튼으로 넘어온 켈트족이 어떤 이들이었고 무엇을 했는지 간단히 살펴보았다. 다음엔 로만 브리튼의 시대에 켈트족과 앵글로색슨의 침공 후 7왕국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까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최초로 브리튼에 정착한 민족 - 이베리아인

 
 브리튼도 선사시대 이전부터 그 이래 인간의 활동이 이어져 오고 있다. 특별이 브리튼은 섬이지만, 드넓은 평야와 온화한 기후로 인해 침략자들에게 수차례 침략 당해왔다. 그중 최초로 브리튼으로 이주한 인종은 이베리아인으로 보고 있다. 그들을 바로 브리튼의 최초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최초인이란 브리튼에서 살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최초로 이주해온 인종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듯 브리튼의 역사는 그야말로 외부 정복의 향연이다. 오늘 살펴볼 것은 이베리아인이지만 이후 켈트인, 로마인, 색슨과 앵글족, 그리고 바이킹의 침략, 그후엔 노르만인들이 최종적으로 브리튼을 정복해 오늘 날의 영국이란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아베리아인은 이젠 유적으로만 그 자취를 추측하지만, 켈트, 로마, 색슨, 노르드, 프랜치 노르만들은 서로를 죽이거나 추방하거나 융합되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가 되었다. 브리튼은 독특한 곳이다. 앞으로 브리튼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보려고 한다.
 
 그 중 오늘은 브리튼의 최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베리아인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이베리아인

 이베리아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선사시대부터 고대까지 스페인과 포르투칼 지역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 동남부 해안가에 살았기 때문이다.  이베리아인이라는 용어를 넓게 사용한다면 당시 이베리아 반도 살고 있던 켈트족, 켈티베리아인, 바스코네스족, 루시타니아인, 투르데타니아인 등 여러 민족들을 포함하는 의미로도 사용이 가능하나, 보통은 이베리아 반도 동남부의 주민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베리아인 들이 살던 지역이 워낙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가지고 있다보니 이베리아인들의 생활양식과 경제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베리아인을 말할 때, 문화나 민족 구성, 국가 구성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오늘 날 우리가 말하는 이베리아인은  로마 제국 이전 이베리아 반도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문화로 규정할 뿐이다. 이들은 거주지와 일부 특징을 제외하면 다른 면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즉 단일 민족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베리아 인들의 유래에 대해 2가지 학설만 있을 뿐 정확하지 않다.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신석시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로 유입되었다는 것 뿐이다. 즉 오늘 날 이베리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민족도 국가도 아닌 단지 신석기 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이베리아 반도에 살았던 인종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중 몇몇은 이베리아 반도를 떠났고 일부가 브리튼으로 이주했다고 추측이 된다. 그렇다면 이베리아 반도에 남았던 이베리아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카르타고와 로마의 공격을 받았고 기원전 1100년 이베리아반도는 페니키아인들 의해 식민지가 되었다. 아마도 이 때 이베리아 인들 다수가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생계 수단

 이베리아인은 주로 농업과 사냥, 채집 등의 방식으로 생활 했다. 선사시대 초기에는 주로 사냥과 수집을 중심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농업과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은 청동과 농경기술을 위한 철 등 금속을 다룰 줄 알았다. 청동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베리아인 내부에서 계층의 분할이 있었던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또한 이베리아인들은 주변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등과 무역을 하면서 구리와 주석 등을 수출했다. 즉 이베리아인들은 발전된 문명을 가진 집단이었다. 농업 혁명과 철기를 다룰 줄 알정도 발전되어 있던 것이다. 
 

 브리튼으로 이주

 이제 오늘은 본론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오늘 글의 핵심은 이베리아인들이 브리튼의 최초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브리튼 섬에서 유명한 민족은 켈트족과 앵글로색슨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펴보러고 하는 이베리아인은 켈트족이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 브리튼에 정착한 인종이었다. 그렇다면 이베리아인들은 어떻게 브리튼으로 오게 된 것일까?
 
 지금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바다가 존재한다. 그래서 영국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려면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는 것이 당연하다.(해저터널이 있지만) 그러나 이베리아인들은 브리튼 까지 배를 타고 항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엔 도보로 브리튼까지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이베리아인들이 브리튼으로 이동할 때는 빙하기였다. 즉 해수면이 낮아져 이베리아 반도와 프랑스 등의 유럽대륙과 영국이 육지로 연결이 되어있던 시기라는 것이다.
 
 그들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이나 노르망디, 브르타뉴 지방에서 아일랜드와 브리튼 섬까지 걸어서 이동했을 것이다. 여기에 브리튼이 거리상으로도 아주 멀리 떨어진 섬이 아닌 유럽 대륙과 가까이 있어서 그들이 이동하는 것에 있어 더욱 쉬웠을 것이다. 이베리아인들이 브리튼으로 이주를 하고 난 후 시간이 흘러 빙하기 녹는 해빙기가 되면서 해수면이 점점 높아졌고 브리튼은 유럽대륙으로부터 분리되어 섬으로 고립되었고 자연스럽게 대륙에서 건너온 이베리아인들이 브리튼과 아일랜드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학자들이 추측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켈트 신화를 보게 되면 켈트 이전에 아일랜드 종족들은 이베리아인이 모티브일 것으로 추측한다. 
 

결론

 사실 이베리아인이 정말 브리튼으로 이주했느지는 확실치 않다. 역사적인 증거는 여전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톰 부스 박사와 마크 토머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과학 잡지 '자연 생태계와 진화'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영국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유해의 DNA와 이베리아 농민의 DNA 사이에 일치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이베리아인과 영국 신석기 시대 농민이 같은 뿌리를 가졌다는 것을 뒷 받침해 줄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 농민들이 아마도 영국의 스톤헨지 등의 거석을 세우는 기념물 전통도 전수 했다고 추측했다.
 
 이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면, 영국의 신석시 시대에 이베리아인들이 들어왔고 그들이 영구의 신석기 유물들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영국의 유명한 신석기 시대 유물은 스톤헨지 등이 있는데 이것들이 모두 이베리아인과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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